리씨(李氏)는 본래 중국(中國) 소호(少昊)의 후예인 요(堯) 순(舜)시대의 명신(名臣) 고요(皐陶)를 비조(鼻祖)로 주(周)나라 때 대학자이며 도교(道敎)의 교주(敎主)이신 노자(老子)를 시조(始祖)로 삼는다.
요(堯) 순(舜)시대에 고요(皐陶)가 법관(法官)인 대리(大理)가 되어 요임금과 순임금을 훌륭히 보좌 하였다.
고요(皐陶)는 뿔이 달린 신양(神羊)인 해치를 데리고 다녔는데 재판(裁判)할때는 해치가 선악(善惡)을 구별할줄 아는 동물이라 잘못한 쪽을 뿔로 받았으므로 언제나 공정한 심판을 할 수 있었다 한다
순임금이 제위(帝位)를 선양(禪讓)하려 할때 우(禹)와 고요(皐陶)가 서로 양보하므로 치수(治水)에 공(功이 큰 우(禹)한테 선양하였다 한다
제위(帝位)에 오른 우(禹)임금도 그 다음 제위는 고요(皐陶)에게 선양하려 하였는데 고요가 우임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고요는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서 탄생하고 묘지는 안휘성(安徽省) 수현(壽縣)에 있다고 전해내려 온다.
자손들이 하(夏) 은(殷)때까지 대리(大理)벼슬이 이어져오므로 이 벼슬이름으로 인하여 리씨(理氏)로 성(姓)을 삼았는데 은(殷)의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紂王)때에 후손 징(徵)이 어찌나 강직하고 바른말을 잘했던지 직간(直諫)하다가 죽음으로 그의 처(妻) 설화부인(契和夫人)이 아들 이정(利貞)을 데리고 피신 기진맥진 하던 중 오얏나무 열매를 따먹고 목숨을 부지했다 한다
그것이 연유가 되어 리씨(理氏)를 발음이 같은 리씨(李氏)로 고쳤다 한다
그리고 이정(利貞)은 진(陳)나라(諸侯國)의 대부(大夫)가 되었다.
후손 (後孫) 노자(老子(BC 574(?)~BC 491(?))이름:耳 자:聃世稱 : 老聃)가 진(陳)나라 땅에서 뒤에 초(楚)나라(제후국)가 된 고현(苦縣:現 河南省 鹿邑)에서 탄생 주(周)나라 수장사(守藏史)가 되었고 섬서성(陝西省) 주질현(周至縣)에서 돌아가셨다고 전해내려 오고 사상가(思想家)로서 도덕경(道德經)을 지어 세상에 널리 전한다
도교(道敎)에서 태상노군(太上老君)인 교조(敎祖)로 높이 받들고있다.
후손(後孫) 숭(崇)이 진(秦)나라 시대 농서( 西) 지방을 유수(留守)하여 농서백( 西伯)에 봉해짐으로 그후 부터 농서리씨( 西李氏)라 부르게 되었다.
훗날 리씨왕조(李氏王朝)인 당(唐)나라 현종때에 리씨(李氏)의 훌륭한 선조(先祖)님인 고요(皐陶)를 덕명황제(德明皇帝)로 노자(老子)를 현원황제(玄元皇帝)로 추존(追尊)하였고 도교(道敎)를 국교(國敎)로 삼았다
리씨(李氏)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인 위(魏)나라 때부터 역사(歷史)의 전면(前面)에 등장하고 여러곳으로 뻗어 나갔다.
오늘날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번창한 성씨중의 하나가 되었고 인구수로 세계에서 첫째가는 대성(大姓)이 되었다.
리씨(李氏)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것은 한(漢) 무제(武帝)시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토평(討平)할때 농서리씨(중국에서는 李氏를 전부 농서리씨라 함)의 후손(後孫) 리진(李震)이 참전 공을 세워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낙랑태수(樂浪太守)가 되었다
그의 증손(曾孫)인 천보(天寶)가 흉노 토벌의 공을 세워 양산후(楊山侯)겸 낙랑태수로 봉해져 후손들이 양산리씨(楊山李氏:現 安岳李氏)가 되었고 동생 천록(天祿)이 양산(楊山:現 安岳)에서 사로(斯盧:現 慶州)로 이전하여 진한(辰韓)의 사로후(斯盧侯)에 봉해지고 그가 전에 살던 지역 이름을 따서 양산촌(楊山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라 유리왕때 6부 촌장한테 사성(賜姓)할적에 양산촌장(楊山村長) 알평(謁平)에게는 본래의 성씨인 리씨(李氏)로 사성(賜姓)하여 오늘날 경주리씨(慶州李氏)가 되었다.
우리나라 리씨(李氏)를 크게 분류하면 중국계(中國系)로는 한사군(漢四郡)시대 한(漢)나라에서 온 양산리씨(楊山李氏:現 安岳李氏) 계통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때 당(唐)나라 장수로 온 연안리씨(延安李氏) 계통 고려시대 송(宋)나라에서 온 안성리씨(安城李氏) 그 밖에 고성리씨(固城李氏)등 여러 본(本)이 있으며 월남계(越南系)로는 안남국(安南國)에서 온 정선리씨(旌善李氏)와 화산리씨(花山李氏)가 있고 위그르계로는 임천리씨(林川李氏)가 있으며 여진계(女眞系)로는 조선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받은 청해리씨(靑海李氏)가 있다
또 경주김씨(慶州金氏) 계통인 광산리씨(光山李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 계통인 인천리씨(仁川李氏)가 있고 경주리씨(慶州李氏)에서 분적(分籍)해 나간 계통이 많다.
전주리씨(全州李氏)인 리성계(李成桂)가 조선왕조를 세웠으며 전주리씨가 우리나라 리씨(李氏)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리씨(李氏)의 본관(本貫)은140 여 본(本)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名門)으로 통하고 인구수로는 김씨(金氏) 다음으로 두번째다(남한 약 7백만).
또 신라 경문왕(景文王)때에 당(唐)나라에서 귀화한 리원(李瑗)의 아들들이 왜구의 침략을 평정한 공으로 안씨(安氏)로 사성(賜姓)받아 갈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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